2011년 이후 자살률이 꾸준히 낮아졌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한해 1만명 이상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17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발간한 ‘2019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 자살 사망자 수는 1만2,463명에 달했다.

자살 유가족은 누군가의 자살에 노출된 후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의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가족은 물론 친구, 지인까지 해당된다. 국내외 연구논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자살자 주변에는 5~10명 정도 자살 유가족이 발생한다.

유가족 수를 최소 5명으로 산정해도 한해 5만명 이상 자살 유가족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자살 유가족 통계가 없지만 지난 10년간 누적된 자살 사망자 수치를 고려하면 우리 사회에 약 100만명 이상 자살 유가족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암, 만성질환 등으로 가족과 사별을 했을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통스러운 감정이 줄어들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자살 유가족들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별 직후의 감정에 머물러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 유가족들이 사별 직후의 고통스러운 감정에 매몰돼 있는 것은 ‘복합성 애도’(Complicated Grief)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선규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는 “복합성 애도 상태에 있는 자살 유가족들은 망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죽음을 믿지 못하고, 고인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과 갈망을 보인다”며 “가까운 친구나 친지들로부터 자신이 소외되거나 고립됐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살 유가족들이 감정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애도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인의 죽음을 현실로 인정하고, 고인의 죽음으로 야기된 고통을 충분히 겪어내야 고인이 없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역ㆍ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들은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자살 유가족 애도 치료는 물론 상담도 역부족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자살 유가족 관리가 미흡한 것을 인정했다. 장영진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 과장은 “자살 유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사별로 법률ㆍ상속ㆍ행정적 문제와 함께 임시 거처 지원 등이 필요하지만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올 9월부터 광역센터 2~3곳, 기초센터 15곳을 대상으로 ‘자살 유가족 원스톱 지원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살예방정책과에 따르면 광역센터에서는 야간 및 휴일 응급출동 및 초기 대응 후 기초센터로 유가족을 연계하고, 기초센터에서는 경찰, 소방, 의료기관과 연계해 자살 유족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사업이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결국 인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수가 적고 계약직 조건인데 야간과 휴일 대응 인력은 물론 유족 지원을 위한 전담인력이 계획대로 충원될지 의문”이라면서 “지속적인 상담과 애도 치료가 가능한 인력을 확보해야 자살 유가족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적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자살 유가족들은 민간단체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부 민간단체에서 자살 유가족들에게 기부금을 요구하는 사례 등이 있어 관계당국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자살 유가족들은 말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지 못해 하루하루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자살 유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외부의 따가운 시선이다. 2005년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이모(64)씨는 친지는 물론 지인들의 결혼, 장례 등에 참석하지 않는다. 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알려진 후 친지는 물론 지인들마저 자신이 관혼상제 참석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씨는 “30년 넘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딸이 결혼을 해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사람이 오면 우리 딸 결혼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축의금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감염병 환자 취급을 한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그래도 자살 유가족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는 자살을 내 일이 아닌 남의 일로 치부하지만 자살은 내 가족, 친지는 물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라며 “자살 유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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