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복지인물iN’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에 감사하며 복지와 관련된 인물의 업적, 비하인드 등을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소식으로 매주 찾아오겠습니다. 복지의 여정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칼 그루발트(Karl Grunewald, 1921~2016, 스웨덴) 박사. [사진=PUB]
칼 그루발트(Karl Grunewald, 1921~2016, 스웨덴) 박사. [사진=PUB]

세계적으로 장애 정책은 돌봄과 보호에 초점을 두고, 수용시설을 중심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그런데 복지의 나라 스웨덴은 인권과 장애인의 역량 강화 관점에서 1997년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를 법(시설 폐쇄법)으로 강제했다. 현재 스웨덴의 모든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스웨덴 시설 폐쇄 정책의 주역은 칼 그루발트(Karl Grunewald, 1921~2016) 아동 정신과 의사다. 그는 시설 입소를 장려하던 스웨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전환하게 하고, 부모들이 시설 폐쇄 반대 주장을 철회하게 만든 인물이다. 돌봄 정책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었던 건, 시설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의 인권 침해가 사회적 화두가 됐기 때문이다.

 

인권 침해 얼마나 심각했길래...탈시설론자

한국 아동과 칼 그루발트 박사(오른쪽 끝). [사진=sormlandsmuseum]
한국 아동과 칼 그루발트 박사(오른쪽 끝). [사진=sormlandsmuseum]

스웨덴의 보건복지부(National Board of Health and Welfare) 공무원이었던 칼 박사는 장애인에 관한 수용시설과 전문 병원에서 실태조사를 실시하다가, 비인권적인 실태를 목격하게 됐다. 한국전쟁 때 칼 박사는 부산 소재의 스웨덴 적십자 병원에 근무하면서 기아·상해 등으로 고통받는 다양한 환자를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그도 놀랄 정도로 스웨덴 장애인 시설의 인권 침해는 심각했다.

칼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비윤리적인 실험에 시설 내 장애인이 동원됐다. 한 연구자는 설탕이 치아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해, 장애인에게 사탕을 먹이고 이를 닦지 않도록 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이에 실험 대상자들은 모두 치아를 뽑아야만 했다.

또한 50년이 넘게 시설의 장애인이 불임시술에 이용당했다. 이 시기에는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더 우월한 유전인자의 연구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실험의 대상으로 장애인과 그 가족이 쓰였다. 특히 이 불임시술이 시설의 강제에 따른 것이라 더 문제였다. 한 사례의 경우,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딸을 둔 부모가 자녀를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으나 시설장이 거부했다. 왜 거부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부모는 자식을 데려오기 위해 시설장의 요청에 따라 불임시술을 강행했다.

그는 언론에 이러한 인권 유린을 알렸고 탈시설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애초에 발달 장애인은 소집단일수록 다른 사람의 반응을 예측하기 쉬워, 자립생활을 도모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칼 박사는 이러한 맥락에 따라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사회 거주를 주장했다.

 

잘 돌아올 수 있도록 관련 연구에도 힘써

칼 그루발트(오른쪽) 박사가 장애인을 보며 웃고 있다. [사진=sormlandsmuseum]
칼 그루발트(오른쪽) 박사가 장애인을 보며 웃고 있다. [사진=sormlandsmuseum]

칼 박사의 폭로로 장애인 시설의 사회적 인식은 나빠졌다. 결국 스웨덴 정부는 1985년 국가 주도의 시설 폐쇄를 적극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민간시설을 전부 사들여 시설이 폐지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지적장애인에 대한 시설은 아동 30개, 성인 130개, 전문 병원 3개가 있었다. 이곳의 장애인은 8천 명이었다. 시설을 떠나야 하는 장애인들의 거취에 대한 또 다른 논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보통 사람의 삶과 동일한 일상생활 보장, 소규모 집단의 거주 환경 조성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시설 폐쇄 원칙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시설 밖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추적 관찰도 진행했다. 그들은 시설 내부에서 혼자 할 수 없었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칼 박사는 지역사회 내 장애인 거주로 집값 하락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의견에 대해 사실과 다름을 증명해 냈다.

시설 폐쇄는 모두가 찬성한 조치는 아니었다. 보호자의 돌봄 부담의 증대로 이어지고,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반대하는 입장도 있었다. 다만 이 연구 결과가 공유되면서 정부의 ‘시설 폐쇄 결정’을 반대하던 부모도 대폭 줄었다. 스웨덴은 1997년 장애인 시설 운영 중단을 의무화하는 ‘시설폐쇄법’을 제정했다. 이로써 1999년 12월 31일 자로 모든 생활시설은 강제로 폐쇄됐다.

 

강제 폐쇄로부터 24년이 흐른 지금 스웨덴은 행동지원서비스 등 관련 법 제도 정비로 중증 장애인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둘러싸고 국내에서는 의견 대립이 첨예하다. 찬성 측은 탈시설화는 장애인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이지만, 반대 측은 시설 밖 생활에 대한 안전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냐는 입장이다. 양측은 모두 장애인 인권에 기초해 의견이 갈리고 있다.

앞선 사례에서 칼 그루바트는 중증 장애인도 지역주민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한국형 탈시설화에 대한 정부의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요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