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77세 여) 씨는 홀몸 치매노인이다. 혼자서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냉장고 속 반찬도 꺼내 먹지 못한다. 하지만 A 씨를 돌봐줄 가족은 없다. 그는 열아홉에 부모를 잃었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 오빠는 몇 년 전 숨졌고 작년 여름까지 자신을 돌봤던 여동생도 치매를 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돈 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치매 때문에 공과금을 내야 한다는 것도 모른다. 올 5월에는 ‘전기와 물이 끊길 것’이란 계고장을 받았다. 그때는 복지센터 관계자가 자기 돈으로 공과금을 대신 내줬다. 이 관계자는 A 씨의 법적인 보호자가 아니어서 A 씨 예금으로는 공과금을 내줄 수 없다.

A 씨가 기초생활수급자라면 정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소득이 적고 가족이 없는 치매노인에게 법적 보호자인 ‘후견인’을 정해주는 ‘치매 공공후견제’를 지난해 9월부터 시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씨는 자산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후견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가 홀몸 치매노인들을 돕겠다면서 ‘치매 공공후견제’를 시행한 지 10개월이 됐다. 하지만 홀몸 치매노인들은 A 씨처럼 집 한 채만 갖고 있어도 후견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치매 공공후견제’의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소득이 적은 치매노인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치매노인의 재산과 신상을 관리해 줄 공공후견인에게 매달 20만 원을 준다. 이런 적은 보수로는 후견인을 구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보니 저소득 치매노인 중에서도 가장 사정이 딱한 극소수만 후견 지원을 받고 있다.

치매 공공후견제가 시작된 지난해 9월 이후 지금까지 치매노인 25명이 지원 대상자가 됐다. 정부는 이 제도를 시행하기로 하면서 2018년 12월까지 치매노인 900명이 후견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치매노인이 자산을 갖고 있어도 후견인을 정해 줄 방법은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치매노인의 후견인을 정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이 적절한 전문가를 후견인으로 정하면 된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 후견인에게 주는 보수는 정부 예산이 아니라 치매노인의 재산에서 지급된다.

하지만 각 지역 치매안심센터 33곳을 확인한 결과 30곳의 담당자들은 이런 절차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알고 있다고 말한 담당자들은 “저소득층이 아닌 노인에 대해 후견 신청을 해 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치매노인한테 후견 신청을 직접 하라고 안내했다”고 답했다.

충북 청주의 한 마을에서 ‘알부자 농사꾼’으로 불린 B 씨(92) 부부는 올해 1월 부부 모두 치매 상태로 이웃에 발견됐다. 곧바로 자치단체와 치매안심센터에서 부부의 사정을 알게 됐다. 하지만 자산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6개월 동안 후견인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6억 원의 자산이 있는 부부는 장롱 속에 현금을 쌓아두고도 치매로 인해 음식을 사먹지 못한다. 지역 복지관에서 식사를 챙겨주지 않는 야간이나 주말이 되면 부부는 오물 범벅이 된 방에서 하루 종일 굶는다. 부부는 치매요양병원에 들어갈 돈이 있지만 입소를 결정하고 비용을 내줄 법적 보호자가 없다.

경기 고양시에서 혼자 살던 C 씨(80·여)는 지난해 8월 치매 증상이 악화돼 정신병동에 강제로 입원하게 됐다. C 씨 명의로 된 4억 원대 아파트를 처분하고 예금 5000만 원을 꺼내 쓰면 평생을 치매요양병원에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C 씨의 재산을 처분하고 시설에 입소시킬 후견인이 없다. 망상 증세가 심해져 이웃 주민을 때리던 C 씨는 노년을 폐쇄병동에서 보내게 됐다.

후견 사건을 주로 맡는 사단법인 온율의 배광열 변호사는 “자산이 많은 치매노인이라도 자치단체장이 도장만 찍으면 법원에 치매노인의 후견을 신청할 수 있다”며 “후견이 필요한 치매노인이 있다면 저소득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조건 방치할 게 아니라 자치단체장이 적극적으로 후견을 청구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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