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에서 한 80대 노인 뒤로 SUV 차량이 바짝 다가섰다. 노인은 차량이 울리는 경적을 알아채지 못하고 천천히 길을 걸어갔다.

 이 시장에선 노인들이 차도를 걷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상점의 물건들이 인도에 가득 쌓여 있어서 노인들이 차도로 내려온다. 차도엔 차량이 자주 나타나 노인들은 채 다섯 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옆으로 비켜서곤 했다. 차량과 상점 사이는 몸을 비틀며 지나가야할 정도로 비좁았다.

시장 한 가운데엔 방문객과 상인들이 이용하는 노상 주차장까지 있다. 소금주(74)씨는 상점의 물건을 쳐다보며 걷다 자신의 앞에 다가선 차량을 늦게 발견하고 놀랐다. 그는 “우리 노인은 행동이 빠르지 못한데, 이렇게 차와 사람이 뒤엉킨 길을 다닐 때마다 겁난다”고 말했다.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일대는 서울에서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가 가장 많은 곳이다. 2015~2017년 39건 발생했다. 이 가운데 20건은 중상이었다. 시장 방문객 가운데 80%가 노인이다. 일방통행 2개 차로에는 한 시간 동안 차량 240대가 지나갔다. 노인 보행 사고의 75%가 시장·병원·대중교통이용시설에서 발생한다. 전국에서 노인 보행사고가 가장 많은 곳도 부산 진구 부전시장(42건)이다.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는 심각하다. 2017년 전국의 보행 교통사고 사망자는 1675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노인이 54%(906명)이었다. 서울의 노인 사망자는 2013년 97명에서 2017년 102명으로 늘었다.

도로교통공단은 2016년 한 달간 횡단보도에서 고령자와 비고령자 각각 300명을 관찰 조사했다. 그 결과 비고령자는 초당 1.24m, 고령자는 1.51m 걸었다. 강수철 도로교통공단 정책연구처장은 “고령자는 보행 속도는 물론이고, 신호등에 반응하는 시간도 비고령자보다 0.25초 느리다. 교통사고의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 “노인 보행자 사고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노인 사고를 막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서울시와 동대문구청은 청과물 도매시장의 일부를 대대적으로 바꾼다. 노인 보행사고 1위란 오명을 벗기 위해서다. 우선 상점을 뒤로 1.75m 물린다. 차도 1m를 줄여 인도를 넓힌다. 한 방향 기준 폭 2.75m를 보행길로 조성한다. 인도 360m를 이렇게 만든다. 차도와 인도 사이엔 투명 보호벽을 설치한다.

시장 입구 횡단보도를 높여 운전자가 보행자를 잘 볼 수 있게 한다. 69개 상점에 11억원 5000만원을 들여 캐노피(지붕모양의 천막)를 설치한다. 7일 착공해 3개월 공사한다. 박태주 서울시 보행정책과장은 “동대문구청과 함께 상인들을 수십 차례 만나 설득한 결과 동의를 얻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총 15억원을 들여 청량리 시장을 포함한 노인 사고 다발 지역 7곳을 정비한다.

하지만 시장 한 가운데 있는 노상 주차장이 여전히 보행을 방해한다. 동대문구청은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지하 주차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180억원이 든다. 소한주 동대문구청 경제진흥과 팀장은 “현재 총 159개면인 노상 주차장을 100개 정도로 줄이고, 160대 주차가 가능한 지하 주차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면서 “국비·시비·구비를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동대문구청은 2016년부터 이 길을 정비하려고 했으나 상인 반발이 컸다. 이날 상인회 소속 6명은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공사 계획을 설명했다. 정현무 상인 운영위원장은 “앞으로도 ‘교통사고 1위 시장’이라면, 누가 오겠느냐. 장사도 더 잘되게 하려는 취지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일부 상인들은 “그럼 물건은 도대체 어디에 쌓아두냐”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상인 박재호(65)씨는 “물건은 눈에 잘 보이고, 발에 채여야 사는데 장사가 잘 안 될까봐 걱정이다”고 말했다.

강수철 도로교통공단 처장은 “노인보호구역 확대와 신호 시간 연장, 중앙분리대 설치와 같이 교통 환경을 노인 친화적으로 정비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인을 배려하는 인식 먼저 생겨야한다. 노인이 차를 알아서 피하길 바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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